1888~1968
홍명희소설가

홍명희는 신간회가 창설된 1927년 무렵부터 조선일보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1928년 11월 21일 소설 <임꺽정>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일보 발행인 겸 주필인 안재홍이 홍명희에게 생활비를 제공하면서 “무엇이든 쓰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홍명희는 <임꺽정> 단 한 편으로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 조선 명종 때 백정 출신의 도적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은 다양한 토속적 어휘와 민속적 자료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풍부한 우리말의 보고’로 평가받는다. 홍명희는 하루 연재분 200자 원고지 13매를 매일 써냈다. 그는 신간회 활동으로 연일 방문객들이 사랑방에 드나들어 소설 창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손님들에게 잠시 기다리라 해놓고 <임꺽정> 원고를 쓰기도 했다. 경황이 없는 중에 쓴 원고도 스토리의 전후가 어긋난다든가 문맥이 안 맞는 대목은 하나도 없어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장면은 묘사와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부인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다. <임꺽정> 중 “달콤한 러브신”을 읽은 홍명희의 부인은 “요사이 왜 늦게 들어오시나 했더니 정말 늦바람이 나신 모양이구려”라며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와 관계를 했게 이런 이야기를 썼지요?”라고 따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홍명희는 젊은 문인들에게 ‘만풍(늦바람) 선생’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일제 치하에서 연재 중단을 거듭하면서 13년 간 <임꺽정>을 연재했던 홍명희는 광복 후 조선일보가 복간되자 방응모로부터 임꺽정을 완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홍명희에게는 임꺽정 집필보다 독립국가의 건설이 더 중요했다. 그는 “임꺽정이가 독립한 후인 오늘날도 내 뒤를 따라다닌대서야”라면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악처럼 임꺽정도 그만하고 미완성인 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