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1985
유봉영부사장·주필

1950년 6월 25일자 조선일보엔 전쟁을 예견한듯한 사설 ‘경계를 요(要)할 괴뢰(傀儡)의 행동’이 실렸다. 고향 평북 철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하며 여섯차례 옥고를 치렀던 독립운동가 출신 기자 유봉영의 탁월한 정세 판단력이 빛난 글이었다. 유봉영은 1935년 9월 서른여덟 늦은 나이에 조선일보에 입사한 것 역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여겼다. 광복 후 복간 때는 교열부장·학예부장·편집주임·논설위원 등을 겸하며 좌익 기자들 사이에서 조선일보의 중도 논조를 지켜냈다. 그 뒤 편집국장, 주필, 부사장을 지냈다. 말수가 적고 항상 웃음을 띠고 있어 ‘돌부처’로 통했지만, 1964년 군사정권에 맞서 ‘언론윤리위법 철폐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만큼 강직한 인품이었다. 국어학자 이숭녕은 그를 “맹호출림(猛虎出林·용맹한 호랑이가 숲에서 나옴)의 기상이 느껴지는 분”이라고 했다. 역사에도 조예가 깊어 1966년 ‘압록강 두만강 너무 만주 땅도 우리 영토’라는 기치를 내건 백산학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