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2006
이규태주필

1960년 늦가을, 입사 2년차 문화부 기자 이규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벅의 지방여행을 수행했다. 덜컹 거리는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펄 벅 여사가 이규태의 무릎을 ‘탁’ 내리쳤다. “저거 보라!” 전북 장수가 고향인 이규태에겐 새로울 것 없는, 볏단 지게를 짊어진 농부가 볏단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풍경이었다. 펄 벅이 말했다. “농부도 볏단을 지고 있다니! 미국 같으면 지게의 짐도 달구지에 싣고 농부도 올라탔을 거야. 소의 짐마저 덜어 주려는 저 마음! 저게 바로 내가 한국에서 보고 싶던 모습이라오.” 이규태는 “내 글의 뿌리는 그때 펄 벅 여사를 통해 발견했던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라 했다. 1968년 ‘개화백경(開化百景)’을 시작으로, ‘인맥(人脈)’, ‘신왕오천축국전’, ‘불교 성지 순례’, ‘기독교 성지 순례’, ‘서역 3만 리’, ‘6백년 서울’…. 이규태의 전매특허는 특유의 박람강기(博覽强記)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며 인간적 맥락을 찾고 의미를 캐내는 기획연재였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통해 ‘우리 것’을 찾으려는 국민적 자신감 회복을 북돋우며 고도성장에 피폐해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6702회 연재한 한국언론 사상 최장수 칼럼 ‘이규태 코너’로 누구도 넘보기 힘든 ‘이규태 한국학’의 성채를 쌓았다. 그가 쓴 ‘소록도의 반란’ 기사는 소설가 이청준에 의해 소설 『당신들의 천국』으로 재탄생했다. 소설 속 이정태 기자가 이규태였다. 서재를 가득 채운 1만5000여 권의 책과 노트, 내용에 따라 적·황·녹·청·흑의 다섯 색으로 분류된 색인·스크랩에 대해 생전의 그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이 분류법에 다 포함된다”고 말하곤 했다. 12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