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982
이은상편집고문

1924년 『조선문단』을 통해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고, 동아일보 『신동아』 『신가정』 등의 잡지편집(1932)을 맡았다. 「성불사의 밤」 「가고파」 등 현대적 감각의 시조를 쓰는 젊은 문인으로 유명세를 타던 1935년 6월, 조선일보에 편집고문 겸 출판부 주간으로 영입됐다. 방응모는 그를 당대 최고 문필가인 이광수처럼 성장할 인물로 평가했다. 방응모는 그에게 북쪽 지역 답사를 제안. 1935년 압록강 지역 등을 답사한 기행문을 16회 연재했다. 월간지 『조광』 창간도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1938년 “더 이상 총독부의 언론탄압에 굴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돌연 사표를 내고 낙향했다. 총독부는 그를 “단군 모자를 쓰고, 세종 두루마기를 입고, 이순신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됐고,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 때 수감돼 감옥에서 광복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