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1950
이광수부사장·편집고문

10세 때 고아가 된 뒤 1904년 일진회의 도움으로 일본 대성(大城)중학교에 입학해 유학생활을 했다. 1907년 홍명희·문일평 등과 함께 『소년』을 발행했고 1917년 매일신보에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동경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해로 망명, 독립신문 사장 겸 편집국장을 지내고 1921년 4월 귀국했다. 1923년 5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1926), 취체역 편집국장(1933)을 역임하며 「마의태자」 「단종예사」 「이순신」 등 역사소설을 썼다. 1933년 8월 조선일보 부사장 겸 취체역, 편집국장, 학예부장, 정리부장 등 5개 직책을 맡아 ‘조선신문계의 무솔리니’ 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선일보에 농촌계몽소설 「흙」 「유정」 등을 연재했다. 1934년 퇴사했다가 1935년 편집고문으로 조선일보에 복귀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흥사단 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구속되며 조선일보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