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으로 이름난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은 조선일보와 인연이 깊었다. 중흥 사주(社主) 계초 방응모와 고향(평북 정주)이 같았고, 그의 아버지는 초창기 조선일보 사진부 주임을 지냈다. 방응모가 만든 이심회 장학생이기도 했던 백석은 일본 유학 후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잡지 『여성』의 편집을 맡는 한편, 조선일보에 외국 문학작품 등을 번역해 실었다. 1935년 「정주성」을 발표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 해 12월 한정판 처녀 시집 『사슴』을 냈다. 윤동주가 필사해 간직했다는 그 시집이다. 퇴직과 복직을 반복했던 백석은 1939년 말 결국 만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소작인·광부 등을 전전하면서도 주옥같은 시들을 지었다. 광복 후 평양에서 조만식의 통역비서로 일한 백석은 고향에 남는 길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