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1950
안석주학예부장

신문기자이자, 화가·연극배우·소설가·시인·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등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다. 1923년 토월회의 연극 ‘부활’에서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25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삽화를 그리며 학예부장을 지냈고, 1927년 조선일보로 옮겨 소설 삽화를 도맡았다. 나도향·엽상섭·이광수 등의 소설에 삽화를 그렸고, 홍명희의 「임꺽정전」 삽화를 맡아 이름을 떨쳤다. 「청충홍충(靑蟲紅蟲)」(1929), 「춘풍(春風」(1935) 등 연재소설과 평론도 잇달아 선보였다. 1931년 학예부장·예술부장을 맡았으며, 1936년 8월 언론계를 떠나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 됐다. 광복 후 중앙일보 고문, 전조선문필가협회 연예부장, 민주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문화시보』를 창간, 발행인이 되었다. 1947년 아들인 작곡가 안병원이 곡을 붙인 ‘우리의 소원’ 노래를 작사했다.